원으로 문장을 읽다
오일러의 논리 도식, ‘모든’과 ‘어떤’에서 추론의 검증까지
작은 원이 큰 원 안에 들어가면 어떤 문장을 읽을 수 있을까요? 원을 움직이고 대상 하나를 표시하면서 범위와 존재를 구분하고, 같은 전제를 만족하는 여러 그림으로 추론을 검토합니다.
독서 모임의 모든 참여자가 발표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발표를 준비한 사람은 모두 독서 모임에 참여했을까요? 문장의 앞뒤를 바꾼 것뿐인데, 처음의 정보만으로는 답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종이 위에 원 두 개를 그려 보면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지난 글에서 원은 원점에서 거리가 같은 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어떤 범주에 속하는 대상들의 범위를 나타냅니다. 같은 원이 길이의 관계를 읽던 도구에서 문장의 조건을 읽는 도구로 자리를 옮깁니다.
사람과 나무도 원 안에 담을 수 있을까?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독일의 한 공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리학과 철학의 여러 주제를 설명했습니다. 논리 도식을 다루는 제102~105편지는 1761년의 글입니다. 프랑스어 원서의 제2권은 1768년에 출판되었으며, 여기서는 1795년에 나온 헨리 헌터의 영어 번역본으로 해당 편지의 설명을 확인했습니다. 글을 쓴 시점과 책으로 나온 시점은 구분해서 읽습니다.[1][2]
제102편지에서 오일러는 하나의 일반 개념을 그 개념에 속하는 대상들을 담는 공간처럼 생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사람’의 범위와 ‘죽는 존재’의 범위를 따로 그린 뒤, 모든 사람이 죽는 존재라면 첫 번째 범위를 두 번째 범위 안에 넣습니다. 범주 사이의 관계를 공간의 포함 관계에 대응시키는 것입니다.[2]
이때 원은 사람의 생김새나 실제 거주지를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누가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를 표현합니다. 원을 크게 그렸다고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글에서는 원의 크기나 면적으로 인원수를 읽지 않습니다.
제103편지의 첫머리에서 오일러는 이런 공간의 모양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핵심은 포함되는지, 서로 떨어져 있는지와 같은 관계입니다. 원이 타원이나 사각형으로 바뀌어도 같은 관계를 보존하면 같은 문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2]
짧은 문장이 허용하는 범위를 읽다
오일러는 제102편지에서 네 가지 문장 형태를 구분합니다. 모든 A는 B다, 어떤 A도 B가 아니다, 어떤 A는 B다, 어떤 A는 B가 아니다. A와 B는 사람이나 사물을 묶는 두 범주의 이름입니다. 이런 문장을 전통 논리에서는 정언명제라고 부릅니다.[2]
‘모든 A는 B다’는 A에 속하면서 B에는 속하지 않는 대상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A의 원을 B의 원 안에 넣으면 이 조건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A도 B가 아니다’는 두 범주에 함께 속하는 대상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두 원을 떨어뜨려 그립니다.
‘어떤 A는 B다’는 A이면서 B인 대상이 적어도 하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A는 B가 아니다’는 A이면서 B에는 속하지 않는 대상이 적어도 하나 있다는 뜻입니다. 두 문장에서는 무엇이 실제로 있다고 말하는지가 핵심입니다. 아래 도해에서는 그 대상을 남색 점으로 표시했습니다.
| 문장의 형태 | 독서 모임의 예 | 이 정보에서 확인할 것 |
|---|---|---|
| 모든 A는 B다 | 독서 모임 참여자는 모두 발표를 준비했다. | 참여자 가운데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없음 |
| 어떤 A도 B가 아니다 | 독서 모임 참여자 중 발표를 준비한 사람은 없다. | 두 범주에 함께 속하는 사람은 없음 |
| 어떤 A는 B다 | 독서 모임 참여자 중 발표를 준비한 사람이 있다. | 두 범주에 함께 속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있음 |
| 어떤 A는 B가 아니다 | 독서 모임 참여자 중 발표를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 참여자이면서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있음 |
방향도 확인해 보세요. A가 B 안에 들어 있다는 정보만으로 B도 A 안에 들어 있다고 결론낼 수는 없습니다. 독서 모임 바깥에서 발표를 준비한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남습니다. 반면 두 범주가 서로 떨어져 있다는 관계는 A와 B의 이름을 바꾸어도 유지됩니다.
‘어떤’이라는 말에 ‘일부만’을 더하지 않기
“독서 모임 참여자 중 발표를 준비한 사람이 있다.” 이 문장을 들었을 때 나머지 참여자는 준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논리에서 ‘어떤’은 적어도 하나라는 뜻으로 읽습니다. 모임의 모든 참여자가 준비한 경우에도 이 문장은 참일 수 있습니다. 참여자가 적어도 한 명 있어야 한다는 존재 조건은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아래 세 그림에는 A와 B에 함께 속하는 대상이 하나씩 표시되어 있습니다. 두 원이 일부만 겹쳐도, A가 B 안에 모두 들어가도, 두 범위가 같아도 ‘어떤 A는 B다’라는 문장을 만족합니다. 따라서 이 문장을 부분적으로 겹친 두 원 하나에만 고정하면 주어지지 않은 관계를 덧붙일 수 있습니다.
오일러도 제105편지에서 결론에 필요한 부분과 아직 결정되지 않은 나머지를 나누어 읽습니다. 한 범주의 특정 부분에 별표(*)를 붙이고, 그 부분에서 확인되는 관계만으로 결론을 이끕니다. 나머지 부분은 다른 범주에 들어갈 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그림 하나를 볼 때도 무엇이 정해졌고 무엇이 열려 있는지를 함께 읽어야 합니다.[2]
현대의 도식 논리 연구에서도 범주의 관계와 대상의 존재를 어떻게 표시할지가 중요한 쟁점입니다. 이 글의 도해와 조작 장치는 원의 배치에 존재 표시를 덧붙여 두 정보를 구별합니다. 원전의 그림을 그대로 복제한 장치가 아니라, 원전의 설명을 오늘의 독자가 비교해 볼 수 있도록 구성한 학습 모형입니다.[3]
원을 바꾸고, 대상 하나를 놓아 보세요
장치는 A가 B 안에 들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A는 독서 모임 참여자, B는 발표를 준비한 사람의 범위입니다. 먼저 존재 표시 없이 네 문장의 결과를 비교해 보세요. ‘모든 A는 B다’는 확인되지만, 실제 참여자가 있는지는 아직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A이면서 B인 곳’을 선택해 대상 하나를 표시해 보세요. ‘어떤 A는 B다’도 확인됩니다. 이어 ‘일부 겹치기’를 누르고 존재 표시를 ‘A이면서 B 밖인 곳’으로 옮겨 보세요. 이번에는 ‘모든 A는 B다’를 거짓으로 만드는 대상이 생깁니다. 하나의 반례만으로도 ‘모든’이라는 문장이 성립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으로 무엇까지 말할 수 있을까요?
초록 원 A의 손잡이를 좌우로 끌어 보세요. 원의 크기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조절 막대는 키보드 방향키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A가 B 안에 들어 있습니다.
원은 범주 사이의 범위를, 남색 점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한 대상 하나를 나타냅니다. 표시가 없는 영역에 대상이 있는지는 열어 둡니다. 사용할 영역이 없으면 해당 선택지는 비활성화됩니다.
A이면서 B 밖인 영역이 없습니다.
공통 영역에 대상이 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원만으로는 공통 대상이 실제로 있다고 확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A가 B 안에 있어 그런 대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직 알 수 없음’은 주어진 정보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해당 문장이 제3의 진릿값을 갖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원의 넓이는 사람 수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대상의 위치는 점의 중심을 기준으로 읽으며, 테두리 자체에는 대상을 놓지 않습니다. 원 배치와 존재 표시를 함께 읽도록 만든 현대적 학습 모형입니다.
‘같은 범위로’와 ‘A를 B 안에’를 오가며 공통 영역의 존재 표시를 유지해 보세요. 배치는 달라져도 ‘어떤 A는 B다’가 계속 확인됩니다. 같은 문장이 여러 그림과 맞을 수 있다는 앞의 설명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장치의 ‘아직 알 수 없음’은 정보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참·거짓 이외의 새로운 진릿값을 붙인 것은 아닙니다. 지금 표시한 정보와 양립하면서 그 문장이 참인 경우도, 거짓인 경우도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존재 표시를 지우는 것 역시 그 대상이 없다고 단정하는 동작이 아니라, 있다는 정보를 더 이상 주지 않는 동작입니다.
이 글에서는 현대 논리의 해석에 따라 ‘모든 A는 B다’만으로 A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하지 않습니다. 원전의 전통적 삼단논법에는 범주의 존재를 전제해야 현대적으로 성립하는 추론도 있으므로, 원전의 모든 추론 형식을 이 장치의 규칙과 동일하게 읽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모든 A가 B이고 모든 B가 C라는 정보에서 ‘어떤 C는 A다’를 얻으려면 A가 적어도 하나 있다는 조건이 더 필요합니다.[2][3]
한 그림에서 보인 결론이 언제나 따라올까?
오일러가 제103편지에서 설명하는 간단한 추론을 먼저 보겠습니다. 모든 A는 B이고, 모든 C는 A라면, 모든 C는 B입니다. B 안의 A, 그 A 안의 C를 차례로 따라가면 결론을 읽을 수 있습니다. 원의 크기와 위치를 바꾸어도 두 포함 관계를 지키는 한 이 결론은 유지됩니다.[2]
이번에는 전제를 조금 바꾸어 보겠습니다. 모든 A는 B이고, 모든 C도 B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어떤 A는 C일까요? 독서 모임 참여자와 글쓰기 모임 참여자가 모두 발표를 준비했다는 이유만으로, 두 모임에 함께 참여한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아래 두 그림은 같은 두 전제를 만족합니다. 왼쪽에서는 A와 C가 겹치며 실제 공통 대상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오른쪽에서는 A와 C가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A와 C는 모두 B 안에 있으므로 전제는 참입니다. 그러나 ‘어떤 A는 C다’는 오른쪽에서 거짓입니다.
전제가 모두 참이면서 결론은 거짓인 경우를 반례라고 부릅니다. 반례 하나가 있으면 그 결론이 전제에서 반드시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확인한 것은 추론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 두 모임에 공통 참여자가 있는지는 별도의 사실 확인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결론이 참인 그림 하나만 찾았다고 그 추론의 타당성이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주어진 전제를 만족하는 모든 경우에서 결론이 유지되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오일러도 제105편지에서 어떤 문장 자체가 참일 수 있다는 것과, 그 문장이 전제에서 정당하게 따라온다는 것을 구분해 설명합니다.[2]
생각그림연구소에서 주장과 근거를 펼쳐 놓을 때도 같은 방법을 써 볼 수 있습니다. 내 결론이 잘 드러나는 그림을 만든 다음, 근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결론이 무너지는 경우를 찾아보세요. 그 경우를 막으려면 어떤 추가 조건이 필요한지까지 적으면, 그림은 생각을 검토하는 작업대가 됩니다.
원을 문장과 표로 바꾸는 세 가지 연습
이번 연습에서는 원의 모양을 따라 그리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세요. 어느 정보가 대상을 모두 제한하고, 어느 정보가 대상의 존재를 알려 주는지를 먼저 구별합니다.
| 읽기의 단계 | 직접 해볼 질문 | 판단의 기준 |
|---|---|---|
| 관계 읽기 | A가 B 안에 들어 있고 B 안의 A 바깥에 대상 하나가 있다면, ‘모든 B는 A다’는 참일까요? | 포함 관계의 방향과 반례의 위치 |
| 관계로 추론 | 어떤 A도 B가 아니고, 어떤 C는 A라면, 어떤 C는 B가 아니라고 결론낼 수 있을까요? | 같은 대상을 두 전제에 걸쳐 따라가기 |
| 공통 관계와 추론 원리 식별 | A에 속함·속하지 않음을 행으로, B에 속함·속하지 않음을 열로 둔 표에서 ‘모든 A는 B다’와 ‘어떤 A는 B다’는 각각 어느 칸에 어떤 정보를 줄까요? | 비어 있어야 하는 칸과 대상이 있어야 하는 칸의 차이 |
첫 번째의 답은 거짓입니다. B에 속하면서 A에는 속하지 않는 대상이 이미 표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A가 B 안에 있다는 관계는 ‘모든 A는 B다’를 나타내며, 문장의 A와 B를 바꾸면 별도의 조건이 됩니다.
두 번째의 결론은 따라옵니다. C이면서 A인 대상 하나를 따라가 보세요. 어떤 A도 B가 아니므로 그 대상은 B에 속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C이면서 B가 아닌 대상이 적어도 하나 있습니다. C의 나머지 대상들이 B와 어떤 관계인지는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 번째에서 ‘모든 A는 B다’는 A에 속함과 B에 속하지 않음이 만나는 칸이 비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A는 B다’는 A에 속함과 B에 속함이 만나는 칸에 대상이 적어도 하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원이 표로 바뀌어도 두 조건의 차이는 유지됩니다.
마지막으로 도해 3의 오른쪽 그림을 다시 보세요. 두 전제를 유지하면서 ‘어떤 A는 C다’를 거짓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문장 하나를 그림으로 옮기고, 그림을 바꾸어 반례를 찾고, 다시 문장으로 설명하는 왕복이 시각적 논리를 읽는 좋은 연습이 됩니다.
출처와 도해 안내
한글 도해 3점과 원 조작 장치는 자체 제작했습니다. 오일러의 제102·103·105편지를 1795년 영어 번역본으로 확인하고, 현대적인 존재 조건과 원전의 전통적 전제를 구분했습니다. 색과 점 표시, 독서·글쓰기 모임의 사례, 원의 위치·크기를 바꾸는 장치는 설명을 위한 구성입니다. 그림이 허용하는 경우들을 비교해 네 문장의 판정과 반례를 검토했습니다. 자료 확인일:
- 『독일의 한 공녀에게 보낸 편지』 제2권 — E344 서지 기록 Leonhard Euler / University of the Pacific, Euler Archive
프랑스어 제2권의 176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판과 권·쪽수 등 서지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아래 영어 번역본과 원서의 출판 시점을 구분했습니다.
- 오일러의 편지 제102·103·105편 — 1795년 영어 번역본 Leonhard Euler · Henry Hunter 영어 번역 · 1795년 제1권 / New York Public Library 소장본, Internet Archive
제102편지의 네 명제와 범위 표현(인쇄면 393~397쪽), 제103편지의 포함 관계와 추론(397~402쪽), 제105편지의 별표로 표시한 부분과 미정인 나머지, 결론의 참과 추론의 타당성 구분(407~409쪽)을 본문으로 확인했습니다. 본문은 오래된 영어 번역을 한국어로 풀었으며, 원본 도판을 전재하지 않았습니다.
- 도식과 도식적 추론 — 오일러 도식의 표현과 한계 Sun-Joo Shin · Oliver Lemon · John Mumma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2025년 9월 15일 개정
제3.1.1절의 오일러 도식, 범주 관계와 존재의 표현 문제를 참고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현대적인 존재 표시와 ‘정보 부족’을 구별하는 학습 규칙을 별도로 제시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