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은 각각 또렷한 순위를 갖고 있다
세 사람이 A·B·C 세 대안을 놓고 선호 순위를 정한다고 하자. 1번은 A>B>C, 2번은 B>C>A, 3번은 C>A>B라고 답한다. 각 순위에는 앞뒤가 분명하다. 1번은 A를 B보다, B를 C보다 좋아하므로 A를 C보다 좋아한다. 다른 두 사람도 같은 방식으로 자기 순위를 끝까지 일관되게 정했다. 이 장면은 실제 선거나 특정 인물을 재현한 자료가 아니라 집단 선택의 구조를 보여 주는 현대적 상상 삽화다. 이제 한 명의 1순위를 세는 대신 두 대안씩 맞붙여 다수의 선택을 묻는다.
문단 자료[2]

콩도르세는 다수결의 힘과 한계를 함께 연구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니콜라 드 콩도르세는 1785년 『다수결 결정의 확률에 해석을 적용한 시론』에서 집단 판단을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이 책은 각 판단자가 일정 조건에서 정답을 맞힐 확률과 다수 판단의 신뢰도를 다룬 배심원 정리로도 알려져 있다. 동시에 여러 대안을 두 대안씩 비교할 때 다수 관계가 일관된 전체 순위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분석했다. 오늘날 ‘콩도르세 역설’이라 부르는 핵심은 다수결 자체가 언제나 잘못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개인의 일관된 순위를 쌍대 다수결로 모아도 집단 관계에는 순환이 생길 수 있다는 발견이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순위는 모두 추이적이다
선호 관계가 추이적이라는 말은 x를 y보다 좋아하고 y를 z보다 좋아하면 x를 z보다 좋아한다는 뜻이다. 1번의 A>B>C에서는 A>B, B>C이므로 A>C다. 2번의 B>C>A에서는 B>C, C>A이므로 B>A다. 3번의 C>A>B에서는 C>A, A>B이므로 C>B다. 세 사람 누구에게도 x>y>z>x처럼 자기 순위 안에서 원을 도는 관계가 없다. 역설은 개인이 모순된 표를 냈기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 개인 순위의 추이성과 집단 다수 관계의 추이성은 서로 다른 성질이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A와 B를 비교하면 A가 2대 1로 이긴다
첫 쌍대결은 A와 B다. 1번은 A>B>C이므로 A를 고른다. 2번은 B>C>A이므로 B를 고른다. 3번은 C>A>B이므로 A를 고른다. A를 B보다 위에 둔 사람은 1번과 3번, B를 A보다 위에 둔 사람은 2번이다. 따라서 A가 B를 2대 1로 이긴다. 여기서 세는 것은 전체 순위의 첫 자리만이 아니다. 각 표에서 비교 중인 두 대안의 상대적 위치를 읽는다.
문단 자료[2]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B와 C를 비교하면 B가 2대 1로 이긴다
두 번째 쌍대결은 B와 C다. 1번은 B를 C보다 위에 두고, 2번도 B를 C보다 위에 둔다. 3번만 C를 B보다 위에 둔다. 따라서 B가 C를 2대 1로 이긴다. 지금까지 집단 관계는 A>B와 B>C다. 개인의 추이성을 집단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면 A>C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집단의 각 비교에서는 서로 다른 두 명이 다수를 이룰 수 있으므로 이 기대는 아직 검산해야 한다.
문단 자료[2]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C와 A를 비교하면 이번에는 C가 2대 1로 이긴다
마지막으로 C와 A를 비교한다. 1번은 A를 C보다 위에 두지만, 2번은 C를 A보다 위에 두고 3번도 C를 A보다 위에 둔다. 따라서 C가 A를 2대 1로 이긴다. 앞선 두 결과와 합치면 A가 B를 이기고, B가 C를 이기며, C가 다시 A를 이긴다. 세 대결 모두 2대 1이라는 똑같은 다수로 결정되었고 계산에도 충돌이 없다. 충돌은 세 결과를 하나의 직선 순위로 세우려 할 때 나타난다.
문단 자료[2]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세 다수결을 합치면 A>B>C>A의 원이 생긴다
집단의 쌍대 다수 관계를 기호 >ᴹ으로 쓰면 A>ᴹB, B>ᴹC, C>ᴹA다. A가 B보다 앞서고 B가 C보다 앞선다는 두 결과에서 A가 C보다 앞선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실제 표결에서는 반대로 C가 A보다 앞선다. 따라서 집단 관계는 비추이적이며 화살표가 원을 그린다. 이 결과는 A가 A보다 낫다는 자기모순을 직접 주장하는 문장이 아니다. 어느 대안을 집어도 그것을 이기는 다른 대안이 있다는 순환 구조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표에서는 콩도르세 승자가 없다
콩도르세 승자는 다른 모든 대안과 일대일로 맞붙었을 때 각각 이기거나, 정의에 따라 적어도 비기는 대안이다. A는 B를 이기지만 C에게 지고, B는 C를 이기지만 A에게 지며, C는 A를 이기지만 B에게 진다. 그러므로 세 대안 가운데 누구도 콩도르세 승자가 아니다. 다만 모든 선거에서 승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대안이 나머지를 모두 이기는 표도 얼마든지 있으며, 그런 대안을 뽑도록 설계된 투표법을 콩도르세 일관적이라고 부른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표결 순서는 마지막 승자를 바꿀 수 있다
순환이 있는 상태에서 두 대안씩 탈락시키는 의제를 생각해 보자. B와 C를 먼저 붙이면 B가 이기고, 이어 A와 B를 붙이면 A가 최종 승자가 된다. C와 A를 먼저 붙이면 C가 이기고, 이어 B와 C를 붙이면 B가 남는다. A와 B를 먼저 붙이면 A가 이기고, 이어 C와 A를 붙이면 C가 남는다. 같은 개인 순위와 같은 쌍대 결과를 두고도 어떤 대결을 먼저 여는지에 따라 A·B·C 모두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다. 의제 설정은 절차의 세부 장식이 아니라 결과에 영향을 주는 권한이 된다.
문단 자료[3]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작은 모형에서도 순환은 가능한 경우 가운데 일부다
세 유권자가 세 대안을 엄격하게 순위 매기고, 여섯 가지 가능한 순위가 각 유권자에게 독립적으로 똑같은 확률로 나온다고 가정하자. 이 ‘공평 문화’ 모형에는 이름이 붙은 세 유권자의 순위 묶음이 6³=216개 있다. 이를 전수 열거하면 다수 순환을 만드는 묶음은 12개이므로 확률은 12/216=1/18, 약 5.56퍼센트다. 이 계산은 현실 선거의 발생률이 아니다. 실제 선호는 독립적이지 않을 수 있고 대안도 공통 축을 가질 수 있다. 표본공간과 균등·독립 가정을 밝힌 교육용 계산이다.
문단 자료[3]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수결은 언제나 순환하는 방식이 아니다
순위를 조금 바꾸어 1번 A>B>C, 2번 B>A>C, 3번 C>B>A라고 해 보자. A와 B의 대결에서는 1번만 A를 고르고 2·3번은 B를 골라 B가 이긴다. B와 C의 대결에서는 1·2번이 B를 골라 B가 이긴다. B는 A와 C 모두를 이기므로 콩도르세 승자다. 다수결 순환은 가능한 위험이지만 모든 선호 묶음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실제 분석에서는 순환 가능성과 현재 자료에서 순환이 확인되었다는 사실을 구별해야 한다.
문단 자료[2]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 축에서 봉우리가 하나면 다수 순환을 피할 수 있다
던컨 블랙은 1948년 대안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놓인 공통 축을 갖고 각 사람의 선호가 하나의 봉우리에서 멀어질수록 내려가는 단봉 선호를 분석했다. A–B–C 축에서 1번의 봉우리가 A, 2번의 봉우리가 B, 3번의 봉우리가 C이고 각자가 거리 순서대로 평가하면 B는 A와 C를 각각 다수로 이긴다. 유권자 수가 홀수인 단봉 선호에서는 중앙 유권자의 가장 선호하는 대안이 콩도르세 승자가 된다. 이는 다수결을 포기한 해법이 아니라 허용하는 선호 영역을 제한해 순환을 막는 정리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투표 규칙을 바꾸면 답도 달라질 수 있다
순위점수법인 보르다 계산을 같은 순환 표에 적용해 보자. 1위 2점, 2위 1점, 3위 0점을 주면 A는 2+0+1=3점, B는 1+2+0=3점, C는 0+1+2=3점으로 모두 동점이다. 쌍대 다수결의 원이 사라진 대신 유일한 승자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는다. 다른 표에서는 보르다 승자와 콩도르세 승자가 달라질 수도 있다. 투표법 하나가 모든 바람직한 기준을 자동으로 만족시키는 만능 처방은 아니다. 입력으로 받는 정보와 승자를 정하는 규칙을 먼저 밝혀야 결과를 비교할 수 있다.
문단 자료[3]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애로의 정리는 이 세 표보다 더 넓은 질문을 다룬다
케네스 애로의 1951년 불가능성 정리는 세 개 이상의 대안에서 개인의 완전하고 추이적인 순위를 사회의 완전하고 추이적인 순위로 모으는 일반 규칙을 묻는다. 보편 영역, 만장일치에 대한 존중, 무관한 대안으로부터의 독립, 비독재성 같은 조건을 함께 요구하면 이를 모두 만족하는 사회후생함수가 없다는 결과다. 콩도르세 순환은 다수결 관계가 추이성을 잃는 구체적 사례이고, 애로의 정리는 가능한 집계 규칙 전체에 관한 더 일반적인 한계다. 이 한 사례만으로 애로의 정리가 증명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집단 선택을 읽을 때는 표와 절차를 함께 본다
집단 결정에서 ‘다수가 원했다’는 문장만으로는 분석이 끝나지 않는다. 먼저 각 사람이 전체 순위를 냈는지 한 대안만 골랐는지 확인한다. 다음으로 두 대안씩 비교했는지, 순위점수를 합쳤는지, 결선과 탈락의 순서는 무엇인지 적는다. 쌍대 결과가 A>B, B>C, C>A처럼 순환하는지와 모든 상대를 이기는 콩도르세 승자가 있는지도 검산한다. 마지막으로 동점 처리, 의제 설정 권한, 전략적 투표 가능성을 밝힌다. 같은 선호 자료에서도 절차가 달라지면 집단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일관성은 집단의 일관성을 저절로 보장하지 않는다
콩도르세 역설의 계산은 짧지만 질문은 깊다. 개인 세 명은 각각 추이적인 순위를 가졌고, 세 쌍대결도 모두 명확한 2대 1로 끝났다. 그런데 결과를 모으자 A>ᴹB>ᴹC>ᴹA의 순환이 생겼다. 여기서 배울 점은 다수의 선택을 하나의 인격처럼 읽기 전에 집계 규칙과 선호 영역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단봉 선호처럼 순환을 막는 조건도 있고, 콩도르세 승자가 존재하는 표도 있다. 다음 회차에서는 개인별 판단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어도 근거와 결론을 항목별로 다수결할 때 모순이 생기는 판단 집계를 살핀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