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 모두 말이 되는데, 위원회의 답은 하나가 아니다
가상의 연구지원 위원회가 한 신청서를 심사한다고 하자. 이 위원회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할 때에만 지원을 승인하기로 미리 정했다. 첫째, 연구 방법이 기준에 맞아야 한다. 둘째, 제출된 자료가 충분해야 한다. 1번 심사자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본다. 2번은 방법은 부족하지만 자료는 충분하다고 본다. 3번은 방법은 괜찮지만 자료가 부족하다고 본다. 각 심사자는 자기 판단에 따라 승인 또는 거절을 정한다. 여기까지는 누구의 판단에도 모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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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기호로 바꾸면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보인다
연구 방법이 기준에 맞다는 판단을 A, 자료가 충분하다는 판단을 B, 최종 승인을 C라고 하자. 위원회의 규칙은 ‘A와 B가 모두 참일 때, 그리고 그때만 C가 참’이라는 뜻이다. 기호로는 C↔(A∧B)라고 쓸 수 있다. 1번은 A·B·C를 모두 참으로 판단한다. 2번은 A는 거짓, B는 참, C는 거짓이라고 판단한다. 3번은 A는 참, B는 거짓, C는 거짓이라고 판단한다. 세 사람 모두 같은 규칙을 정확히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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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방법: 근거부터 표결한다
위원회가 먼저 ‘연구 방법이 기준에 맞는가’를 묻는다고 하자. A에 찬성하는 사람은 1번과 3번이다. 반대는 2번 한 명이다. 따라서 다수결로 모으면 집단은 A를 참으로 채택한다. 아직 이상한 일은 없다. 세 사람의 판단 중 둘을 그대로 따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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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근거도 다수의 찬성을 얻는다
이번에는 ‘자료가 충분한가’를 표결한다. B에 찬성하는 사람은 1번과 2번이다. 3번만 반대한다. 그래서 집단은 B도 참으로 채택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A를 지지한 다수와 B를 지지한 다수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A의 다수는 1번·3번, B의 다수는 1번·2번이다. 두 번의 다수결은 각각 자연스럽지만, 그 결과를 한 사람의 판단처럼 묶는 순간 새로운 문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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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를 먼저 모으면 결론은 ‘승인’이다
집단은 A도 참, B도 참이라고 결정했다. 처음에 정한 규칙에 따르면 두 조건이 모두 참일 때 그리고 그때만 승인해야 한다. 따라서 근거별 표결을 먼저 한 뒤 규칙을 적용하면 집단의 최종 결론은 C, 곧 승인이다. 이 방식을 흔히 전제 중심 또는 근거 중심 절차라고 부른다. 집단이 먼저 공동의 근거를 만든 뒤, 그 근거에서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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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론만 바로 표결하면 ‘거절’이다
같은 세 사람에게 이번에는 근거를 따로 묻지 않고 최종 결론만 투표하게 해 보자. 1번만 승인이고 2번과 3번은 거절이다. 그러므로 최종 결론 C에 대한 다수결은 1대2로 거절이다. 각 사람이 근거를 스스로 종합해 내린 결론을 그대로 한 표씩 세는 방식이다. 같은 사람, 같은 자료, 같은 승인 규칙인데 집단의 답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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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잘못 센 것이 아니다
승인과 거절이 갈린 이유는 계산 실수도, 누군가의 변심도 아니다. 근거 중심 절차는 ‘집단이 무엇을 근거로 인정하는가’를 먼저 정한다. 결론 중심 절차는 ‘각 사람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렸는가’를 바로 모은다. 두 절차는 서로 다른 대상을 집계한다. 그래서 다수결이라는 말만 들어서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무엇에 대해 먼저 투표하는지가 집단의 답을 바꾼다.

개인은 모두 일관적인데 집단만 흔들린다
이 문제를 이해할 때 가장 놓치기 쉬운 지점이 있다. 1번은 A와 B를 모두 인정했으니 승인했다. 2번과 3번은 두 조건 중 하나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거절했다. 세 사람은 모두 C↔(A∧B)를 지켰다. 즉 개인의 합리성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여러 사람의 판단에서 서로 다른 부분만 다수결로 뽑아 하나의 집단 판단으로 합칠 때, 개인에게는 없던 불일치가 새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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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항목을 모두 따로 투표하면 모순이 눈에 보인다
A·B·C를 각각 따로 다수결한다고 하자. A는 참 2표, B도 참 2표다. 그런데 C는 거짓 2표다. 집단의 판단은 A, B, ¬C가 된다. 그러나 공동 규칙은 A와 B가 모두 참이면 C도 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항목별 다수결의 결과를 전부 그대로 집단의 판단으로 채택하면 집단은 자기 규칙과 맞지 않는 판단 묶음을 갖게 된다. 각각의 표결이 정당해 보여도 전체가 자동으로 일관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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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는 법학에서 먼저 선명하게 드러났다
여러 명의 판사가 둘 이상의 쟁점을 판단하는 상황에서는 ‘쟁점별로 다수를 모아 최종 결론을 계산하는 방법’과 ‘각 판사의 최종 결론을 직접 모으는 방법’이 서로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루이스 콘하우저와 로런스 세이거는 1986년 다인 재판부의 판단 구조를 분석하면서 이런 문제를 다루었다. 뒤이어 이 현상은 교리적 역설이라고 불렸고, 법원을 넘어 위원회와 전문가 집단의 판단을 연구하는 더 넓은 문제로 확장됐다. 이 글의 연구지원 사례는 그 논리 구조를 쉽게 보기 위한 교육용 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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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중심 절차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근거를 먼저 모으면 집단이 공식적으로 채택한 이유와 최종 결론을 서로 맞출 수 있다. A와 B를 공동 판단으로 받아들였다면 C를 도출하고, 둘 중 하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C를 거절한다. 집단의 설명 구조가 선명해진다. 특히 결론에 이르는 이유를 공개해야 하는 조직에서는 이 점이 중요할 수 있다. 다만 이 방식은 개별 구성원들이 직접 내린 최종 결론의 다수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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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중심 절차에도 이유가 있다
결론만 직접 모으는 방식은 각 사람이 전체 사안을 검토해 내린 최종 판단을 그대로 존중한다. 구성원 한 명의 표는 그 사람이 고려한 여러 이유를 종합한 결과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조직은 결론 자체에 대한 개인의 책임과 판단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집단이 근거 A와 B에 대해 각각 무엇을 믿는지와 최종 결론이 서로 어긋날 가능성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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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어느 방식이 진짜 다수결인가’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두 절차 모두 다수결을 사용한다. 차이는 표를 세는 규칙보다 표를 세기 전에 무엇을 집단 판단의 단위로 정했는지에 있다. 집단이 이유를 함께 소유해야 하는지, 최종 판단만 함께 결정하면 되는지, 각각의 쟁점이 얼마나 독립적인지, 결정 결과가 얼마나 중대한지에 따라 절차 선택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실제 제도는 집계 규칙뿐 아니라 판단해야 할 항목과 그 사이의 논리 관계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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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좋은 조건을 한꺼번에 지키기는 어렵다
판단 집계 이론은 이 작은 사례를 일반화한다. 구성원들의 판단을 항목별로 공정하게 반영하고, 특정 사람에게 결과를 맡기지 않으며, 언제나 논리적으로 일관된 집단 판단을 만들고 싶다는 요구들은 각각 매력적이다. 그러나 판단 항목들이 충분히 복잡하게 연결되면 이런 조건들을 모두 동시에 만족시키는 집계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리스트와 페팃은 2002년 논문에서 이러한 불가능성 결과를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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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의 콩도르세 역설과 어디가 다른가
바로 앞 회차의 콩도르세 역설에서도 개인은 각자 일관된 선호 순위를 갖고 있었지만, 다수결을 모으면 사회의 선호가 A>B>C>A처럼 순환할 수 있었다. 이번 문제의 대상은 선호 순위가 아니라 참·거짓으로 판단하는 서로 연결된 명제들이다. 23회는 ‘누구를 더 선호하는가’를 모을 때 생기는 순환이고, 24회는 ‘어떤 근거와 결론을 참이라고 볼 것인가’를 모을 때 생기는 논리적 불일치다. 둘은 닮았지만 같은 역설은 아니다.

연재의 마지막 질문: 다수의 생각은 어떻게 하나의 생각이 되는가
스물네 편의 마지막에서 남는 질문은 ‘몇 표가 더 많은가’보다 조금 더 깊다. 개인의 판단을 모아 집단의 판단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어떤 구조를 새로 만들어 내고 있는가. 각 사람은 일관되었는데도 집단은 모순될 수 있고, 같은 다수결이라도 근거를 먼저 모을지 결론을 바로 모을지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좋은 집단 판단은 표를 세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무엇을 함께 판단할지, 어떤 논리 관계를 지킬지, 어떤 절차를 선택할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판단 집계의 역설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개인의 논리와 집단의 논리가 같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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