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한 문장들 사이에서 생긴 한 가지 걱정
저자는 원고의 문장마다 자료를 다시 확인하고 논증도 손질했다. 이제 각 문장을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책을 묶어 놓고 머리말을 쓰려니 다른 판단도 떠오른다. 긴 원고에는 자신이 아직 찾아내지 못한 오류가 적어도 하나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는 편이 합리적이다. “각 문장은 옳다”는 판단들과 “이 문장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틀렸다”는 판단은 각각 그럴듯하지만 한꺼번에 참일 수 없다. 이 장면은 역설을 설명하기 위한 현대의 상상 장면이며, 특정 저자의 실제 집필 장면을 재현한 것이 아니다.

1965년, 겸손한 머리말에서 역설을 꺼내다
데이비드 매킨슨은 1965년 《Analysis》에 실린 짧은 논문 「서문의 역설」에서 이 문제를 제시했다. 그는 레이먼드 와일더가 수학책 머리말에서 남아 있는 오류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 대목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중요한 것은 예의 바른 겸양 표현이 아니다. 저자는 본문의 각 주장을 믿으면서도, 자신의 과거 실수와 인간의 오류 가능성을 근거로 그 주장들 가운데 실제로 잘못된 것이 적어도 하나 있다고 믿는다. 이 두 종류의 믿음이 모두 합리적일 수 있다는 점이 문제를 날카롭게 만든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책의 주장들을 기호로 펼쳐 놓는다
책에 담긴 주요 주장을 p₁, p₂, …, pₙ이라고 하자. 저자는 각각을 조사하고 검토했으므로 Bp₁, Bp₂, …, Bpₙ을 가진다. 여기서 Bp는 “저자가 p를 믿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저자는 적어도 하나가 거짓이라고 믿으므로 B¬(p₁∧p₂∧…∧pₙ)을 가진다. 괄호 안의 긴 연언은 책의 모든 주장이 참이라는 명제다. 따라서 머리말의 믿음은 바로 그 긴 연언을 부정한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보다 강한 조건이다
서문 역설은 저자가 단지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p일 가능성과 ¬p일 가능성을 함께 열어 두는 것만으로 p와 ¬p를 모두 믿는 것은 아니다. 매킨슨이 다룬 강한 머리말에서는 저자가 원고 전체를 돌아본 뒤 “실제 오류가 적어도 하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본문의 모든 주장에 대한 믿음과 머리말의 믿음 사이에 공동 불일치가 생긴다. 이 강도를 약화하면 원래의 역설도 약해진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각 문장을 믿는 이유는 따로 있을 수 있다
개별 믿음은 무턱대고 생기지 않는다. p₁은 원자료와 맞고, p₂는 계산을 다시 해도 같으며, p₃은 동료의 검토를 통과했을 수 있다. 어느 문장 하나를 지목해 철회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저자는 각 문장을 계속 믿을 수 있다. 머리말의 판단도 같은 증거에서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긴 글을 쓰며 축적된 실수 경험, 교정의 한계, 비슷한 책에서 발견되는 오류 같은 전체 수준의 근거에 기대어 생긴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믿음들을 묶는 연언 원리가 작동한다
연언 원리, 또는 집합 원리는 “p를 합리적으로 믿고 q도 합리적으로 믿는다면 p∧q도 합리적으로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원리를 유한 번 반복하면 Bp₁, Bp₂, …, Bpₙ에서 B(p₁∧p₂∧…∧pₙ)으로 넘어간다. 일상 추론에서 이 원리는 매력적이다. 따로 확인한 두 사실을 함께 써야 계획과 설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우 많은 오류 가능성이 작은 항목을 한꺼번에 묶을 때에도 제한 없이 적용할 수 있는지가 역설의 중심 쟁점이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동 불일치와 한 개의 모순 믿음은 구별된다
저자가 Bp₁부터 Bpₙ까지와 B¬(p₁∧…∧p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곧장 “모순문 하나를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선 그 믿음들의 내용이 함께 참일 수 없는 공동 불일치가 있다. 여기에 연언 원리를 적용하면 저자는 B(p₁∧…∧pₙ)도 얻게 되고, 다시 머리말의 믿음과 묶으면 연언과 그 부정을 함께 믿는 단계까지 간다. 어느 단계에서 멈출지를 구분해야 ‘모순을 믿어도 된다’는 과장과 ‘공동 불일치가 합리적일 수 있다’는 주장을 혼동하지 않는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복권은 같은 긴장을 확률에서 만든다
헨리 카이버그는 1961년 복권 사고실험으로 높은 확률에 따른 수용과 연언 원리의 충돌을 드러냈다. 공정한 복권에 표가 100장 있고 정확히 한 장만 당첨된다고 하자. Lᵢ를 “i번 표는 낙첨된다”로 놓는다. 어느 표를 집어도 P(Lᵢ)=99/100=0.99다. 0.99 이상인 명제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규칙을 쓰면 L₁부터 L₁₀₀까지 각각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각 표에는 같은 0.99가 붙는다
복권이 공정하고 당첨표가 하나뿐이라는 조건에서는 1번 표도, 47번 표도, 100번 표도 낙첨 확률이 0.99다. 표의 번호는 확률에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한 표만 골라 보면 “이 표는 질 것이다”라는 판단이 매우 그럴듯하다. 여기서 0.99는 표본공간이 100개의 가능한 당첨표로 이루어지고 그 가운데 99개가 해당 표의 낙첨과 양립한다는 뜻이다. 실제 복권 일반에 관한 통계가 아니라 이 교육 모형의 정확한 값이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모두 낙첨될 확률은 0이다
개별 명제의 높은 확률을 그대로 쌓으면 L₁∧L₂∧…∧L₁₀₀, 곧 “모든 표가 낙첨된다”를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정확히 한 장이 반드시 당첨된다는 조건 아래에서 이 연언의 확률은 0이다. 동시에 “어느 표인가가 당첨된다”의 확률은 1이다. 따라서 높은 개별 확률에 따른 수용, 연언 원리, 명백한 불일치를 피해야 한다는 요구를 모두 유지하기 어렵다. 복권 역설은 계산 착오가 아니라 이 세 규범의 충돌이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묶는 표가 늘수록 공동 낙첨 확률은 줄어든다
100장 가운데 서로 다른 k장을 골라 그 표들이 모두 낙첨된다는 사건을 보자. 정확히 한 장이 당첨되므로, 고른 k장이 모두 질 경우는 당첨표가 나머지 100−k장 가운데 있는 경우다. 따라서 확률은 (100−k)/100이다. k=1이면 0.99, k=10이면 0.90, k=50이면 0.50, k=99이면 0.01, k=100이면 0이다. 개별 판단을 더 많이 묶을수록 처음의 높은 확률이 그대로 보존되지 않는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낙첨 사건들은 서로 독립이 아니다
각 표의 낙첨 확률이 0.99라고 해서 모든 낙첨 사건을 독립으로 놓고 0.99¹⁰⁰을 계산하면 안 된다. 한 표가 당첨되면 다른 표들은 모두 낙첨되고, 한 표가 낙첨되었다는 정보는 남은 표의 당첨 확률을 조금 높인다. 사건들이 의존하므로 곱셈법칙을 독립 사건처럼 적용할 수 없다. 이 모형에서 모든 표가 낙첨될 확률은 약 0.366이 아니라 정확히 0이다. 표본공간의 “정확히 한 장 당첨” 조건이 계산을 정한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서문과 복권은 닮았지만 출발점이 다르다
두 역설은 개별 명제를 받아들일 이유가 있고, 그것들을 모두 묶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체가 된다는 구조를 공유한다. 그러나 출발점은 다르다. 복권에서는 공정성, 표의 수, 당첨 규칙이 주는 수치 확률이 각 낙첨 판단을 뒷받침한다. 서문에서는 저자가 각 주장을 직접 조사한 근거와, 자신이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라는 질적 자기평가가 맞부딪힌다. 서문 역설을 단순히 “각 문장이 높은 확률이다”로 바꾸면 원래의 질적 특징을 놓친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세 규범 가운데 어디에 제한을 둘 것인가
문제는 세 요구를 동시에 지키기 어렵다는 데 있다. 첫째, 충분히 잘 뒷받침된 개별 명제는 믿거나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그렇게 받아들인 명제들을 연언으로 묶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합리적 믿음의 내용은 명백한 모순으로 나아가지 않아야 한다. 한 대응은 큰 집합에서 연언 원리를 제한하고, 다른 대응은 확률만으로 완전한 믿음을 허가하지 않으며, 또 다른 대응은 어떤 명제들이 함께 패배되는지 따진다. 어느 하나도 모든 경우에 자동으로 적용되는 간단한 해법은 아니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확률의 정도와 전면적 수용을 나눈다
한 사람은 L₁의 신뢰도를 0.99로 둘 수 있다. 이것은 L₁을 참으로 전면 수용해 이후 추론의 확정 전제로 삼는 것과 다르다. 확률적 믿음의 정도와 예·아니오로 작동하는 완전한 믿음을 구별하면, 높은 확률이 곧 수용을 허가한다는 규칙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일상과 과학에서는 결정을 내려야 하므로 확률만 기록하고 영원히 수용을 미룰 수는 없다. 손실의 크기, 조사 목적, 수정 가능성을 함께 반영하는 문맥적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좋은 믿음 집합을 묻는 네 가지 질문
서문과 복권의 역설을 만날 때에는 네 가지를 차례로 묻자. 각 명제를 받아들이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 근거는 개별 항목에 관한 것인가, 전체에 관한 것인가. 연언으로 묶을 때 확률과 오류 위험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마지막으로 지금 필요한 태도는 확률의 정도를 기록하는 것인가, 행동과 추론을 위한 수용인가. 역설은 겸손을 버리라고도, 논리를 버리라고도 명령하지 않는다. 개별 판단의 합리성과 믿음 집합 전체의 관리가 서로 다른 과제임을 보여 준다. 다음 회차에서는 진행자가 문 하나를 열어 정보를 준 뒤 선택을 바꿀 이유가 생기는 몬티홀 문제를 살핀다.
그림 확대해서 읽기
확대한 그림은 좌우로 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